감상

23년 8월 5일 토요일에 처음(?)으로 독서모임에 나가게 되어 읽은 책. 모임에서 의견을 교환하면서 나만의 미처 정리되지 않은 여행의 이유를 명시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가 김영하를 알게 된건 tvn 예능 방송인 알쓸신잡(알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을 통해서다. 가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면 개개인의 말투, 말하는 방식, 말하는 내용 등 때문인지 말에서 그 사람의 성품, 향기가 진하게 묻어나는 사람이 있다. 비록 알쓸신잡을 통해서만 봤지만 김영하 작가도 그 중 하나라 생각된다. 김영하 작가의 말투를 방송에 접하게 되어서일까, 처음으로 읽어본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을 때도 작가의 말투가 연상되어 좀더 글을 음미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아는 사람들과 대화 혹은 대중 매체 등과 같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여행을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많이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흐릿해진건지 아니면 그 이유들이 체화가 안되서인지 여행의 이유에 대해 명확히 말하기 힘들었다. 단순히 추억으로 남은 여행의 경험이 그리움에 좋다라고 말하고 또 가고 싶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나와 주변 사람들은 일상을 지내다보면 어떠한 형태이던지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지난 추억에 대한 그리움일까? 좋은 추억이 아닌 여행이 없는 것 같다.

"여행의 이유"에서 저자는 자신의 경험기,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서술하며 본인의 '여행의 이유'에 대한 사고를 서술한다.

가볍게 읽기 좋고, 김영하 작가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정리되지 않은 나만의 여행의 이유를 명료하게 만들 수 있고, 또 일상에서 여행을 하는 느낌을 얻을 수 있는 "여행의 이유" 일독을 권한다.

인용

인상 깊던 구절들 중 일부. 다만, 산문의 특성일까 해당 구절들의 문맥을 알아야만 구절들을 더 깊게 음미할 수 있다.

(18p)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22p)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발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71p) 오래 전에 읽은 소설을 다시 펼쳐보면 놀란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게 거의 없다. … (중략) … 모든 기억은 과거를 편집한다.

(82p)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97p)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104p) 여기에서 일종의 카프카적 상황이 발생한다. 수십 명이 프로그램(알쓸신잡)에 관여하지만 이 여행의 전부를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117p) 나와는 다른 그들의 느낌과 경험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내 여행의 경험에 얹힌다. … (중략) …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206p)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212p)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때로는 내가 먼저 귀국하기도 한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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